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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 (서대문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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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꿈이있는세상 댓글 0건 조회 108회 작성일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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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西大門刑務所)의 배경과 변천사

 

서대문형무소는 대한민국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옛 교도소로, 1907년에 설립되어 1987년에 폐쇄되었고 1988227일에 대한민국의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 강점기(1910~ 1945)때 당시 조선인들이 구류되고 고문을 받던 장소로 악명 높은 감옥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서울 구치소라 불리며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습니다.

1998115일부터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가 관리하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재개장하였습니다.

 

현재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적 제32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감옥은 당시의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이 어떻게 수감생활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유의미한 장소입니다.

 

 

1. 서대문형무소의 설립 배경

서대문형무소는 조선시대인 1907년부터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조선형무소(朝鮮刑務所)"로 불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경무대(朝鮮刑務臺)"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제는 대한제국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한 1907년에 항일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해 현재의 서대문구 현저동에 근대적 감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에게 설계를 맡겼습니다. 그 설계에 따라 1908년에 완공된 감옥의 첫 이름은 '경성감옥'이었습니다. 최초의 경성감옥은 약 500명을 투옥할 수 있는 560여 평 규모의 목조건물이었으며, 증축 과정에서 수감자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원형의 감옥인 파놉티콘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의 패망 이후에는 현대적인 이름인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로 변경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1910-1945) 일본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구금하고 처형하여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18세 미만의 여성,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를 수용하였으며, 1944년 기준 2,890명이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2. 서대문형무소의 변천사

1)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조선인들을 억압하고 항거 운동가들을 구금하는 곳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정치범들이 감옥으로 수감되어 많은 고난과 고문을 겪었습니다.

 

2) 1945년 광복후

1945년 광복 후 서대문형무소의 명칭은 '서울형무소'로 바뀌었고 이 시기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되었습니다. 1949년까지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활동에 따라 이광수, 노덕술 등의 친일파가 수감되었지만, 반민특위 활동이 와해된 후 이승만 정부 치하에서는 오히려 독립운동가였던 정치인들이 서울형무소에 수감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3) 한국전쟁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대문형무소는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북한군이 반공·친미 인사로 추정한 인물들을 투옥하였으며, 이후 유엔군이 이 지역을 탈환하면서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후 1950년 서울을 수복한 이승만 정부는 북한군에 협조한 부역자들을 서울형무소에 가두었습니다.

 

4) 군사독재시대

1961년에 '서울형무소'의 명칭은 '서울교도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등과 같은 정치적 변동에 따라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김두한은 1947, 1954, 1965, 1966년 등 4차례 서울형무소 및 서울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수감된 원인은 국회 오물투척사건이었습니다.

 

그 후 1967년에 '서울교도소''서울구치소'로 그 이름을 바꾸어 1987년에 폐쇄될 때까지 같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5) 민주주의 시대: 한국전쟁 이후 서대문형무소는 법무부의 소속이었으며, 그 이후에도 군사정권과 민주정부가 번갈아 사용했습니다. 이후 1987년 민주주의의 흐름이 강해짐에 따라 정치범들을 구금하는 빈도는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1995520일에는 역사적인 상징물로 보존되기로 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3, 서대문형무소의 건축양식과 내부시설

 

1) 건축양식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강점기때에 지어져 당시의 양식과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주로 서양 양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본 전통 건축 양식과 결합되어 있는 특징적인 건물들이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기둥과 건축물의 형태가 단순하게 설계되었고, 외벽에는 벽돌과 시멘트가 사용되어 내구성이 강화되었습니다. 형무소 내부는 작은 셀(cell)과 감방(cell blocks)으로 구성되어 감금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구조는 형량 수감자의 감금공간과 치역경찰관들의 작업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안전하게 관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2) 내부시설

서대문형무소 내부는 크게 시설물과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설물: 근로장, 취사실, 수용실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며,

건축물: , 감방과 같이 수감자의 감금 및 교도에 필요한 시설입니다.

- 셀은 일반적인 형무소에서 수감자가 투숙하는 공간으로 감금 공간의 기본형태입니다. 일반적으로 낮은 천장과 작은 창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벽면은 강하고 튼튼한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져 탈출을 막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간이시설인 열실(롤러셔터 다보슬)과 단칸방(석실, 쌍용방) 등이 있으며, 수감자의 형량 등급에 따라 배치되어 있습니다.

- 감방은 셀보다 크기와 구조가 복잡하며, 보통 수용정원이 많은 형무소에 설치됩니다. 서대문형무소에는 감방 밖에 없으며, 수용 정원이 큰 만큼 감방도 매우 큰 형태이었습니다. 감방은 일반 셀보다 더욱 튼튼한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수감자의 탈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 외부 보호벽이 설치되어 있어 수감자나 방문객 등이 형무소 외부로 탈출하는 것을 방지했으며, 수감자가 탈출하거나 방문객이 침입했을 때를 대비해 경비탑이나 방비와 같은 구조물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3) 사옥내 주요 건물

 

- 보안과 청사: 서대문형무소의 업무를 총괄한 건물로 1923년 지상 2,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졌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회의실과 소장실. 지하는 조사실로 사용되었으며, 일제가 위압감을 주기 위해 정면의 지붕을 높고 웅장하게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서대문형무소의 역사 전시관으로 사용된다.

- 중앙사: 옥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건물로 1920년대 중반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잔존해 있는 10, 11, 12옥사와 연결되어 있고 중앙 간수소의 기능을 맡았다. 1층은 간수들의 사무 공간, 2층은 수감자들의 사상교육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9옥사: 1920년대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형무소에서 중앙사(중앙 간수소)와 분리되어 있는 유일한 옥사로서, 일제강정기에 주로 '사상범'을 가두고 특별 감시와 통제를 했던 감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사형장: 지상 1,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로, 건축연대는 1916년으로 추정된다. 사형장 건물은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1층에서 사형을 집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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